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주-대평리 전투 (문단 편집) === 공주 전투 === 7월 14일 아침 미 34연대 방면을 정찰중인 항공기가 북한군들이 나룻배 2척으로 도하를 시도한다는 보고를 했으며, 이에 34연대의 대대들은 적들 수가 늘어날 때까지 침묵했다. 반면 11포병대대 A포대는 동일 항공기의 연락을 받고 155mm 곡사포 2문을 그 지점을 향해 한동안 퍼붓기도 했다. 직후 적들은 삼교리 일대에 포진한 제63포병대대 본부를 노리고 박격포 공격을 가해 통신교환대를 박살냈다. 그런데 직후 적들은 전방의 34연대를 우회해 제63포병대대의 예하부대들을 노렸으며, 우선 A포대가 기습을 받았다. 그리고 오후 2시 15분 무렵엔 남쪽의 B포대도 대대급 공격을 받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광복군|광복군]] 출신 [[장철부]] 소령이 지휘하는(직접 현장 지휘는 아님) [[독립기갑연대|육군 독립기갑연대 기병중대]]가 돌격하여 적을 배후를 공격하였고 비록 적을 격퇴하지는 못하였지만 B포대원들과 함께 철수에 성공하여 미군 부상병들을 말에 실어 논산으로의 후송을 도왔다. 이 전공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가 1979년 발간한 한국전쟁 공식 전사(戰史) - [[https://new.mnd.go.kr/user/imhc/upload/pblictn2/history_of_war_in_korea02/index.html|한국전쟁사 제2권 지연작전기 (p. 471)]]에서 기병중대의 소대장이었던 조철돈 소위의 증언 형식으로 그리고 미 육군 군사((戰史) 연구소(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가 1961년 발간한 한국전쟁 공식 전사(戰史) - [[https://history.army.mil/html/books/020/20-2/CMH_Pub_20-2.pdf|'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 (p. 128)]]와 T. R. 페렌바크가 저술한 미국의 유명한 한국전쟁 역사책인 [[https://erenow.org/ww/this-kind-of-war/9.php|This kind of War]]에도 기술되어 있다. * '한국전쟁사 제2권 지연작전기' (p. 471) - 조철돈 소위 증언 원문 발췌 >'''"우리 중대가 유구전투(평택―조치원 부근의 전투 참조)를 치르고 공주로 복귀하다 보니 12일 밤이 되었는데, 그때 이미 공주의 금강교가 끊어진 다음이었다. 그래서 금강 서안을 따라 밤중으로 말을 달려 그 이튿날 13일 아침에 부여대안에 도착, 그곳에서 배를 구하여 부여로 도하하였다. 부여에서 공주로 가다가 지석리(부여 동북쪽 7.5km) 부근에서 하안정찰을 나왔다가 길을 잃은 미군 6명을 만나 함께 삼교리로 갔다. 그곳에 포진지가 있었고, 서쪽 강변에는 미군수색중대와 공주경찰병력이 배치되어 있다고 하였다. 중대는 우금치(삼교리 동북쪽 1.8km) 남쪽에 중대본부를 두고, 우금치 서쪽 고지에 경계병력을 배치하였다."''' >'''"14일, 중대본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고개 서쪽 고지에서 사격이 가해져서, 급히 달려가보니 적이었다. 그 고지의 적을 무찔렀는데 그 동안에 삼교리의 포병진지가 공격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포대를 구출하려고 달려갔으나, 이미 포대가 수라장이 된 뒤여서 적의 등을 찔러 포대와 합세를 하였을 뿐 적을 격퇴하지는 못하였다. 결국 포대와 함께 그곳에서 철수하게 되고말았는데, 105mm곡사포 5문인가 모두 공이를 뽑아 파괴하였다. 중대의 말(馬)에 미군 부상병을 싣고, 우리 병사들은 걸어서 동쪽의 논산도로로 빠졌는데, 도로에 나오니 미군차량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그들을 후송해 갔다. 중대는 논산으로 집결하여 그날 밤을 보낸 뒤, 그곳에서부터 미 제34연대의 지휘를 벗어나, 15일 여산―전주로 내려가, 서남지구 전투사령부의 장악하에 들게 되었다."''' * '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ul' (p. 128) 원문 발췌 >'''"A group of South Korean carvalry rode past the battery and attacked west toward the enemy, but the confusion was so great that no one in the artillery position seemed to know what happened as a result of this intervention"''' * T. R. 페렌바크의 'This kind of War' 원문 발췌 >'''"Next, it was B Battery's turn. Four hundred enemy infantry surrounded the battery area, and for several minutes something akin to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Custer]]'s last stand was repeated. Then, while a group of ROK horse cavalry, who had ridden out of nowhere to attack the enemy, slashed into the North Koreans on the west, the artillerymen went march order."'''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